"전통적 문자해독 능력에서 디지털 리터러시에 이르기까지, 산업 생태계의 격변기마다 국가적 기획으로 새로운 앎과 배움의 과제가 장려 또는 강제됐다. '리터러시(literacy)'는 언어를 매개로 앎과 무지를 가늠하는 공통 범주이면서, 국가와 자본이 노동자에게 주문하는 인지노동의 목록이기도 하다. [중략]
지금 우리 사회는 어린 세대에게 미래의 일자리를 미끼로 디지털 리터리시[sic] 학습을 강요하고 있다. [중략] 하지만 이렇게 배우고 익힌 디지털 리터러시는 정보통신 산업에 회수될 인적 자원 수준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중략]
오늘날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수익 모델에 철저히 구속돼 있다." (91-93)

"디지털 리터러시의 기획 역시 환전될 수 있는 앎의 부가가치를 좇는 일만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삶의 관계를 숙고하는 질문들로 리셋(reset)할 수 있다. [중략] 기술에 입각한 인간의 제작 활동 일반을 일컫는 테크네는 예술(art), 숙련기술(skill), 공예(craft)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관계를 근대 자본주의의 도구적 테크놀로지 너머로 이끈다. 하이데거는 테크네의 본질이 세계를 비도구적 측면에 풀어놓고, 탈은폐(unsecuring)하는 것이며, 밖으로 내어놓는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중략] 테크놀로지에 대한 테크네의 모색이야 말로 우리 시대에 절실한 기술 리터러시의 핵심 요건이다." (94-95)

"제도권 교육 바깥에서 자본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우리 삶의 관계를 면밀히 이해하고 대안적 삶의 실천을 이끌어낼 기술 리터러시와 이를 교육할 페다고지를 창안해야 한다. 기업과 국가가 주문하는 방식과는 다른 리터러시의 기획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들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공생(共生)의 기술을 디지털 테크놀로지에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중략]
언메이크랩(unmakelab.org, 구 청개구리제작소)과 프로토룸(PROTOROOM) 스튜디오처럼 규모와 인력은 미미하지만 열정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자생적 교육 단체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중략] 디지털 신자유주의에 맞서 시민사회가 만들어야 할 기술 리터러시에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과 교류가 필요하다." (97)

"절망을 넘어 미래를 발명하는 일." (98)

"무엇을 배울 것인가?"